나는 왜 사주추명에 관심이 많은가.
사주추명에 관심이 많다.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범죄심리, 서양점성술, 애니어그램, NLP 등등 인간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한 탐구심이 남다르다.
왜 그럴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명확하게 답변해 준 것이 '사주'였다.
다른 벗들도 내 탐구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선명하진 못했다. 아마도 내가 동양인이며
동양적 사고방식에 오래동안 길들여진 탓일 것 같다.
아무튼 사주에서는 내가 '편인' 성분과 '식신'성분이 남달라 인간에 대한 탐구심을
불태울 수 있다고 단언한다.
사주추명은 학문적 이론체계를 갖췄는가.
학문의 연구방법은 크게 이론적 접근방법과 경험적 접근방법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논리로써, 후자는 검증방법으로써 이론을 완성해 나간다.
그리고 각각의 이론과 연구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다른 학문들도 그렇듯이.
사주추명에는 논리가 있다. 그런데 서양처럼 절대론과 상대론으로 나뉘어진 논리가
아니라 이 둘을 함께 수용한 논리이다. 그래서 오해가 많다.
이현령 비현령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주추명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저급하게 바라보게 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사주추명의 연구방법 때문이다.
학문 연구방법론에는 임상연구와 상관연구, 실험연구가 있다.
후자로 갈수록 '과학'과 '보편성'이라는 칭찬을 해주는 풍토인데 사주추명의 연구는 100%
임상연구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오랫동안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멸시되어
왔던 이유 중의 하나도 그의 연구방법론이 사례별 임상연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프로이드의 이론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할 정도가 아니라 요즘 다시
과학적 행동주의자들의 입김을 걷어내고 그의 이론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런 반동형성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조야한 실험과 논리에 대한 반발심과
문화적 트렌드가 다양성으로 흐르면서 그간 사장되어왔던 이론들에 대한 칼날을
거둬들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검증 가능성'이다. 검증될 수 있는 논리는 확대재생산되며 검증될 수 없다면 폐기처분해야 한다.
그런데 사주추명의 경우는 유독 다른 학문과 달리 내재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8자, 즉, 생년월시란 데이타가 기본이 되는데 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 태어나고 있는 신진세대는 정확한 데이타를 입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론도 있고 연구방법론도 있고 정확한 데이타도 있다면 도대체 사주추명을 학문의 반열에서 굳이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까?
사주추명의 역사만큼 자유분방한 단어들.
그런데 사주추명을 학문적 이론으로 생각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
바로 용어의 문제이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말은
꼭 하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모든 언어는 상징이다. 그런데 이 상징체계에 혼란이
온다면 오해와 왜곡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사주추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용신이라는 말도 <자평진전>에서는 격국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다른 책에서는 쓰임이 다르다.
사주에서는 특히 용신이 중요하다.
사주에서는 8자중 자신의 정체성은 일간(태어난 일의 천간)인 반면 자신의 변화의
뿌리는 월지(태어난 달의 지지)에 있다고 본다.
용신은 이 둘의 공존을 위한 필수영양분이다.
말하자면 용신은 절대론(일간)과 상대론(월지)의 合이라는 기관차에 엔진격인 셈이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사주추명이 일간과 월지를 비교하면서 풀이되는 과정은 모든 학파의 공통지점인데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변화의 뿌리를 점검하면서 향 후 어떻게 나무가 자라 줄기를 내고
열매를 맺게 될지를 가늠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형상을 갖출지를 예견하는 것은 바로 그 씨앗과 뿌리내림을 관찰하는데 있다.
8자 중 씨앗(일간)과 뿌리내림(월지)이라는 두 글자를 제외한 6자는 바로 주관적인 환경이다.
이 주관적인 환경은 상호작용에 의해 때론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일간과 월지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그 변화가 제 아무리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꼬리말을 붙인다고 해도 하늘에서 내려온 씨앗을 땅에 뿌리내리게 한다는 장엄한 생명력 앞에서는 허접한 한숨이나 웃음을 토해낼 뿐이다.
그런 웃음과 눈물도 씨앗이 전해져 땅에서 발아하지 않았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기쁨 그 자체이며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인간고해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되는 과정에 느꼈던 희열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다.
몇몇의 사람은 깨달음의 오르가즘이 너무나 커서 미친듯이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고 성인이라는 이름도 붙고 존경도 받고 뭐 그런다.
그런데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도 가끔은 '내가 살아있다'라는 존재감 자체로 행복한 순간이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하지만 바로 내 뿌리는 왜 이 모양이야. 내 씨앗은 왜 이래. 불평불만과 불안감이 스친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도 있다.
'절대자유'이다.
지멋대로 살아도 된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므로.
그래서 자신의 삶을 걸고 한 번 도전을 해 봐도 된다. 나같은 잡초인생은.
8자중 일간과 월지 두 자를 제외한 6자를 놓고 장기 한판을 둬 보자.
어떻게 하는 것이 더욱 내게 유리할 까 고민도 해보자. 뭐가 두렵겠는가. 잡초인생인데.
이 때 반짝이며 떠오르는 글자가 하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 살아보면 된다.
그것이 용신이다. 사실 用神이라기 보다는 用字라고 하는 것이 더욱 명확할 것 같다.
장기를 두는 방법은,
1. 일간의 주위를 둘러본다.....> 이 놈의 씨앗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
껍질이 주변 세력 때문에 넘 두껍지 않은지....발아하는데 힘이 드니까.
껍질이 주변 세력 때문에 넘 얇지는 않은지....발아를 못할 수도 있으니까.
2. 월지의 주위를 둘러본다.....> 이 놈의 뿌리상태가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
뿌리에 수분 공급이 넘 많으면.... 뿌리가 썩는다.
그러나 썩은 뿌리에도 버섯은 자란다.
뿌리가 바위산에 있으면............ 나무가 휜다.
그러나 바위산의 나무는 더욱 아름답다.
뿌리가 수풀림에 자라면 ........... Survival Game. 머리 숙이거나 높이 뻗거나.
뿌리가 불길에 휩쌓이면 ........... 생존의 갈림길.
그러나 타버린 재는 새로운 자양분이다.
3. 일간과 월지를 함께 둘러본다....> 그림을 그리고 이 후 자라나는 나무의 모습을
그려본다. 만약 관찰 후 6자 중 나무에게 필요한 글자를 정해주고, 대운과 세운에서
나무를 함께 도와줄 글자가 있는 지 찾아본다.
'명리학의기초.통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정도를 알아야 사주의 기초를 뗀거다 (0) | 2009.12.16 |
---|---|
[스크랩] 精.氣.神 三寶 (0) | 2009.12.16 |
[스크랩] 명리고서 잡변 (0) | 2009.12.16 |
[스크랩] 하도의 구성 (0) | 2009.12.16 |
[스크랩] 태극과 오행 (0) | 2009.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