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산서문(袁樹珊序文)
임신년 초겨울에 구장형원(句章蘅園)주인이 아들 보재(簠齋)와 오랜 친구인 진신장(陳莘莊)과 임여향(林茹香)이 우리 마을에 볼일이 있어 함께 왔었다. 그 때 그들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내가 명을 잘 볼 줄 안다는 것을 듣고 이씨읍강루(李氏挹江樓)에 음식을 준비하고 초대했다. 그래서 내가 가보니 첫눈에 그들은 호걸들인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 자리에서 나는 “서로 우연히 처음 만났어도 오랜 친구와 같고 음양을 대화하는 것이 함께 낙천(樂天)하다”라는 시를 읊었다. 그러자 보재(簠齋)는 원래 시와 문장에 능한 사람인지라 나의 시에 답하여 “10년 밖에 되지 않은 역학공부를 입에 담기는 부끄럽지만 마음만은 강절(康節)선생을 따르려고 흠모해 마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그 겸허하고 넓은 마음이 정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탄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손씨(孫氏)가 우연히 임 철초(林鐵樵)선생이 주해를 단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라는 정초본(精抄本)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내가 그 책을 읽어보니 그 책은 옛날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의 본문에 대강을 싣고 주해를 세목으로 달았으며 원래 있던 주해 외에 또 새로운 주해가 달려 있었다. 그 내용은 요지를 밝히고 각 구절마다 사주를 예로 들어 증명하면서 중요한 핵심을 배우도록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필체는 세련되어 있었고 이치를 밝히는데 정교함을 추구하였으며 쓸데없는 어귀 하나 없이 그야말로 명리학중에서 보기 드문 유일본이었다. 마지막에 관복거사(觀復居士)가 기록한 발문을 보고서야 이 책이 해녕진씨(海寗陳氏)가 몰래 저장해 온 책인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또 그곳에는 어디에 뜻이 있는 사람이 있어 이 책을 출판하여 유통시켰으면 하고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주인에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장문양공(張文襄公)이 말하기를 이름을 세상에 알리려면 고서를 출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답니다. 책이란 오래되어도 사라지지 않으니 책을 출판한 사람의 이름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선현들의 깊은 뜻을 전달하여 후세에 배우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고 선현들이 직접 하지 못한 일을 돕는 선덕을 쌓는 좋은 일도 되는 것이니 생각을 많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 “이 책은 명리를 논함에 있어 이치가 있고 문장도 잘 되어 있어 내가 오래 전부터 복사 출판하여 여러 동료들에게 내 놓으려고 생각하던 중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보재(簠齋)가 또 말하기를 “부친께서는 이 책을 출판할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이 있던 진신장(陳莘莊)과 임여향(林茹香)도 나를 보고하는 말이 “우리들도 힘을 써 교정을 책임 질 터이니 선생님께서는 첫 머리에 한 말씀만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금년 초여름이 되자 보재(簠齋)가 정말로 이 책을 복사한 것 4권을 우편으로 보내왔고 또 서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승낙한 일도 있고 해서 내가 자세히 읽어보니 제 2권 45페이지에 임 철초(任鐵樵)선생의 사주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주는 癸巳, 戊午, 丙午, 壬辰으로 여기서 임철초(任鐵樵)선생이 건륭(乾隆)38년(1773년) 4월 18일 辰時에 태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명을 해석한 것을 보니 “위로는 부친의 뜻을 계승하여 이름을 떨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전원(田園)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니 나는 여기에서 임 선생의 부친께서는 틀림없이 이름이 알려진 관리였고 임 선생의 가산은 틀림없이 중류의 가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해석하기를 “묘목(卯木)대운에서 임수(壬水)가 절지에 있고 양인(陽刃)이 생을 받으니 혈육에 변고가 생겨 가산을 탕진하였다”라고 하였으며 또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명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임 선생이 명리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는 나이가 벌써 30세가 다 넘어서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내가 천성이 괴팍하여 아첨할 줄 모르고 대쪽 같은 성격이라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굳게 지키는 것은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처럼 충직하고 온후해야 한다는 훈시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임 선생의 인격이 절개가 있고 기풍이 대단한 안빈낙도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 3권 12페이지에 계사년(癸巳年)에 출생한 사주를 해석하면서 “이 사주의 년(年), 월(月), 일(日)은 내 사주와 모두 같고 태어난 시간만 임진시(壬辰時)로 바뀌었을 뿐인데 쇠약한 살(殺)이 억제를 못하니 이 사람 역시 동생 여섯이 있었지만 똑똑한 동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동생들도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파산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임 선생의 친구도 형제로 인하여 같은 고생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제 2권 74페이지에 사주가 임자(壬子)년에 출생한 사주를 해석하면서 “정사(丁巳)대운을 만나 화재를 연달아 입었다”라고 하였는데, 그 사람의 사주를 보면 56세에 정화(丁火)운이 시작되는데 그때가 도광(道光) 27년(1847년) 정미(丁未)년이 된다. 여기에서 임 선생이 75세에도 정성을 들여 미래를 예측하고 사람들의 명을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관복거사(觀復居士)가 기록한 발문을 보면 “진(陳)선생이 임(任)선생은 어느 시대의 사람입니까? 라고 물으니 나도 어려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책을 다 읽어보지 않았고 또한 명리학에 통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임 선생이 태어난 곳에 관하여 본래 책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나름대로 감히 추측을 하지 못하겠지만 그 책에 새로 증가하여 기록한 주해를 본다면 대부분이 “명리약언(命理約言)”과 “자평진전(子平眞詮)”에서 채택한 것으로 “약언(約言)”은 “해녕진소암(海甯陳素菴)”이 저술한 책이고 “진전(眞詮)”은 “산음심효첨(山陰沈孝瞻)이 저술한 책으로 이 두 사람은 모두 절강 사람이었다. 이 책은 세상에 출판된 것이 없이 개인적으로 필사하여 전달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도 절강 사람들이 많았다. 진 소암은 강희(康熙) 5년(1666년)에 사망하였고 신 효첨은 건륭(乾隆) 4년(1665년)에 진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임 철초선생이 건륭 38년(1773년)에 출생한 것으로 계산을 해보면 그들과 시대차이가 길게는 약 100년이 좀 넘고 짧게는 단지 몇 십 년밖에 차이가나지 않는다. 이것으로 볼 때 임 선생도 절강 사람이 아니겠는가하고 추측을 해 본다.
약언(約言)과 진전(眞詮)의 이론에 대해서 나는 처음부터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던 것으로 내가 저술한 “명리탐원(命理探原)”에 많은 것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철초선생이 저술한 “천미(闡微)”와 비교하면 태산에다 작은 흙 언덕과 비교하는 만큼의 큰 차이가 난다. 임 선생은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오랫동안 세밀히 연구하고 깊이 사유하였기에 전체의 본말을 관통하여 문장을 기록한 것이다.
선생이 오행의 생극왕쇠가 거꾸로 되는 이치에 대해 논한 것이 현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왕한 것은 극하는 것이 좋고, 극도로 왕한 것은 설기해야 좋고, 쇠약한 것은 생해야 좋고, 극도로 쇠약한 것은 극해 주어야 좋다”라고 한 것이 가장 심오한 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사람은 후한 것과 박한 것이 있고 산천도 같지 않듯이 명에도 귀천의 구별이 있어 세덕(歲德)이 뚜렷하게 다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천명(天命)을 지리(地理)와 인사(人事)에 결합시킨 말이다.
그러고 또한 임 선생은 사람의 명을 논함에 있어 어떤 사주는 순수하게 중화되어 태평세월의 재상의 명이고, 어떤 사주는 벼슬길이 청고하고 재능이 탁월한 명이고, 어떤 사주는 사업을 경영하여 많은 재산을 모으는데 근검하여 성공할 명이고, 어떤 사주는 고향을 떠나 부잣집에 들어가 일할 명이고, 어떤 사주는 탐욕이 심하고 성격도 괴팍한 명이고, 어떤 사주는 돈을 물 쓰듯 하여 집안이 망할 명이고, 어떤 사주는 생산을 하지 않아 재난이 있을 명이고, 어떤 사주는 가난한 집의 출신이지만 사람됨은 현숙한 명이고, 어떤 사주는 젊어서 수절하여 자식을 잘 키워 이름을 떨칠 명이고, 어떤 사주는 재물에 집착하여 가난한 것이 싫어 남편과 이혼하고 자식까지 버리는 명이고, 어떤 사주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뜻밖의 풍파가 있을 명이고, 어떤 사주는 갯버들은 가을에 시들고 송백은 서리를 맞아도 무성한 명이다. 라고 하는 등 크게 칭찬한 것이 있는가 하면 책망한 것도 있듯이 그 어느 하나 심혈을 쏟지 않은 것이 없다. 대의를 간단하고 심오한 말로 설명하였는데 관건은 모두가 세상이치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옛날에 군자는 죽은 후에 존경받는다고 하는데 아마 임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이 만약 이것을 명리학 책으로만 본다면 하나는 얻고 둘을 잃는 것이 되며 눈앞만 보고 멀리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되며 또한 형원(蘅園)부자가 이 책을 출판하는 노력과 성의의 마음에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중화민국 22년(1933년) 癸酉年 여름 5월 21일
진강원수산(鎭江袁樹珊)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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