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생은 열국(列國)의 유의(游醫)였다.
각국 임금들과 신하들과 평민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하며 떠돌아 다녔다. 열국 중 제(齊) 나라가 안기생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였다. 왜냐하면 제나라의 민풍(民風)이 순박하고 인심이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 나라에는 고질병으로 고생하는 가족들이 있는데 3 대 4 대 할아버지 때 부터 지금 까지 안기생의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기생은 명리(名利)를 초월한 사람이며 오직 백성들을 질병으로 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안기생의 나이를 정확하게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일 백살 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백살 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소문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안기생에게 직접 나이를 묻는다. 그러면 안기생은 "나는 내 나이를 잘 기억하지 못하오" 하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기생을 천세공(千歲公)이라고 부른다.
어느 해 이소군(李少君)이란 한의사가 태산에 약초를 캐러 올라갔다. 갑자기 의식불명으로 쓰러졌다. 의사를 급히 구할 수도 없었으며 의사가 있는 곳 까지 백리 길이 넘는다. 이상하게도 우연히 안기생을 만났다. 안기생이 큰 숨을 들이쉬고 나서 환자의 진맥을 해 보더니 "이 사람의 병의 원인은 아주 복잡하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지어주는 신루산(神樓散)을 복용하면 서서히 병정이 호전될 것이다." 고 말했다.
안기생은 한약 주머니 속에서 신루산 1 전(錢)을 꺼내어 이소군에게 복용시켰다. 그리고 나서 안기생은 떠나가 버렸다. 안기생이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이소군의 병은 치유되었다.
신루산은 도대체 어떤 약인가? 처방은 도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신루산의 처방을 찾을 길은 묘연하다.
이소군은 한나라 때 의사였다. 대유(大儒) 동중서(董仲舒)와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동중서가 고질병에 걸렸다. 이소군은 태산에서 채취한 약초를 사용하여 약물치료를 한 결과 동중서의 병은 완치되었다. 그리고 빠졌던 동중서의 이빨이 모두 다시 자라났다고 한다.
진시황(秦始皇 : BC 221 - BC 210)이 6 국을 통일한 후 신선약(神仙藥)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전국의 천하 명의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을 만들게 하였다.
진시황이 동유(東游) 때 안기생을 만났다. 진시황과 안기생은 사흘 밤 사흘 낮을 함께 동거하며 장생불사약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진시황은 안기생의 박학다식 함에 경탄하였으며 안기생으로 부터 양생술(養生術)을 배우고 금(金)과 은(銀) 수 천냥과 옥덩어리를 하사(下賜) 하였다.
진시황은 안기생의 심오한 학식과 오묘한 양생술을 비싼 돈을 주고 산 셈이나 다름없다. 안기생은 진시황과 대담 중에 진시황이 욕심이 너무 많고 속세에 속한 피곤한 사람이며 양생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안기생은 그 당시 국도(國都)인 함양성(咸陽城)을 떠나 진시황이 하사 한 금은 보석을 모두 버려버리고 양 소매 자락에 맑은 바람을 일으키며 세상 만사를 다 떨치고 어디론지 훌쩍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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