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옥은 후한(後漢) 낙성(雒城: 현재 사천성 광한(廣漢) 사람이다. 세세대대로 글읽는 집안이었으며 밥술이나 굶지않고 먹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 다섯살 된 곽옥은 심성이 착하고 천성이 인후하여 그의 부친은 곽옥이 대부대귀(大富大貴) 한 것은 싫고 고향에서 평범한 의사가 되어 질병으로 고통받는 불쌍한 백성들을 치료해 주는 인술을 배우는 것을 희망했다.
그래서 곽옥의 부친은 곽옥을 데리고 그당시 명의 정고(程高)를 배알하러 갔다. 그리고 곽옥의 부친은 자기 아들이 장래 인술을 펼칠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을 희망한다고 정고에게 말했으며 자기 아들 곽옥에게 의술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이때 정고는 이미 환갑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비하여 신체가 건강했다. 그리고 정고는 마침 자신의 의술을 전수할 인재를 찾고 있었다. 정고는 곽옥을 대면하고나서 곽옥이 나이에 비하여 점잖고 예절이 밝다는 것을 알았다. 정고는 곽옥이 의사로써 기본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고는 곽옥의 부친에게 즉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고는 곽옥이 자기옆에 있는 것만은 허락해 주었다. 정고가 곽옥을 반년 동안 관찰하고나서 곽옥이 자기 제자로써 손색이 없다고 인정될때 정식으로 도제(徒弟)를 허락하겠으며 의술을 전수해 주겠다고 곽옥의 부친과 약속했다.
곽옥은 정고와 반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여러 단계의 시험을 거쳤다. 정고는 곽옥의 심지가 선량하고 천자총명하며 의학분야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이 있어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함으로 확실히 자신의 의술을 전수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제자라고 믿었다.
정고는 곽옥에게 정식으로 입문(入門)의 예(禮)를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술을 전수해 주기 시작했다. 곽옥은 보물이 가득 묻혀있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느꼈다. 곽옥은 정고로 부터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음을 느꼈다. 정고는 자신의 반평생 동안 연구하고 임상을 통하여 경험한 의술과 옛날 자신의 스승이었던 부옹이 자기에게 전수해 준 의술까지 모두 곽옥에게 전수했다.
곽옥은 정신을 집중시켜 의학의 연구에 몰두했다. 10 년 동안 곽옥은 정고의 교육을 받는 중에 곽옥은 정고의 저서 방진육미법(方診六微法)과 음양불측술(陰陽不測術)을 열심히 연구하여 정통했다. 더불어 부옹의 침경진맥법(針經診脈法)도 능숙하게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었다.
27 세 때 곽옥은 정식으로 간판을 내걸고 정확한 진단과 약석(藥石)치료로 어려운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유해 주었으며 가난한 백성들에게 특별히 그 처지가 되어 동정해 주었다. 그리고 치료비는 조금도 받지 않았다. 곽옥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며 그의 의덕에 대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그의 명성은 자연적으로 날로 날로 세상에 퍼져나갔다. 3 년의 짧은 시간안에 그의 명성은 전국에 퍼졌다. 당시 한나라 화제(和帝:서기89-105)가 즉위 하였다. 지방정부에서 곽옥을 천거하여 곽옥은 조정의 태의원(太醫院) 시의(侍醫)로 예를 갖추어 초빙(招聘)되었다. 조정내에 수 많은 의학전적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더욱 풍부한 의학지식을 흡수하여 그의 의술은 진일보 발전하게되었다.
곽옥은 사람됨됨이가 충실하고 온후하며 정직했다. 그는 태의원내에서 모든 의사(의사)에 대하여 주의깊고 신중하게 처리했으며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태의원 태의승(太醫丞)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곽옥은 조정내의 모든 의정업무(醫政業務)를 총관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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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는 곽옥의 의술이 신품(神品)의 경지에 들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러던차에 화제는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머리속에 떠올랐다. 태감에게 지시하여 곽옥을 진궁(進宮)하라고 명하였다.
곽옥은 "대단히 황공하옵니다. 빌어먹을 소인! 소인이 젊었을때 있던 병이 또 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하고 화제를 향하여 아뢰었다. 화제는 곽옥이 무슨 말을 하고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러워 했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곽옥은 더듬더듬 말하며 "소인은 어렸을때 빈천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가난한 백성들의 질병을 돌볼때는 약만 쓰면 병이 치유되었었지요...." 하고 화제에게 아뢰었다.
곽옥은 "고관대작들의 병을 볼때는 때때로 너무 조심함으로 반복해서 고려하고 헤아려 따져보기 때문에 질병이 완전히 치유된 환자의 숫자는 단지 10 중 6,7 밖에 않되었습니다. 소인이 태의원에 입사(入仕)한 후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밤....오늘밤....귀비의맥이......" 하고 말을 더듬거렸다.
곽옥은 두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며 용기를 내어 "소인의 공적이 없음에 대하여 폐하께 용서를 빕니다. 귀비에게 병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고 말을 계속하려다 멈추었다.
화제는 "그런데....어쩧단 말인가? 거침없이 솔직하게 말해 보아라" 고 곽옥에게 말했다.
침실안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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