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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비법

[스크랩] 정고(程高) 침경맥대사(針經脈大師)

동한시기(東漢時期 : 서기 25 년 - 서기 220년)에 정고 선생은 사천성 부강 부근에 있는 광한(廣漢)에서 태어났다. 17 세 때 부모를 여의고 천애의 고아가 되었다.

정고는 그때 부터 부잣집에 가서 소나 말을 먹여주고 밥을 얻어 먹었으며 때때로 임시 고용되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거나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정고는 마을에 유랑하는 신비인물이 가끔 나타난다는 소문을 들었다. 백발이 창창한 그는 남루한 의복을 입고 다니며 끼니때가 돌아오면 저자에 나가 걸식을 하고 강변으로 나가 낚시질을 한다. 그는 물론 집도 없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허물어진 집안이나 부서진 사당이 그의 임시 거처란다. 그 노인의 이름과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부옹(涪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 노인의 이름은 자연적으로 부옹이 되어 버렸으며 그 또한 부옹이란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천고마비 지절의 어느 날 오후 기괴한 일이 발생했다. 구대(邱大)라고 불리우는 농사군이 일을 마치고 밭두룩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강가에서 활신선(活神仙)을 한분 만났다고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구대는 밭에서 녹두를 수확하며 한나절을 보낸 후 매우 피곤함을 느꼈다.

원래 구대는 풍습병이 있다. 양쪽 무릅 관절이 붓고 쑤시며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아픔을 참기 위하여 두주먹을 불끈 쥐고 이빨을 아둑 물고 있었다. 송곳으로 지르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날에 비하여 조금 일찍 그래도 해가 지기전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강변에 도착되었을때 백발을 휘날리는 노인이 큰 바위위에 앉아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구대는 길만 쳐다보고 걷고 있었다. 너무나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쳐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낚시질 하던 노인은 구대를 향하여 "어이! 여보시오! 당신이 걷는 모습을 보니 어떤 병이 있음이 틀림없오!" 하고 말을 걸었다. 구대는 걸음을 멈추고 힘없이 "그렇습니다. 온몸이 아프며 양쪽 무릅의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고 대답했다. 노인은 낚싯대를 땅에 놓고 가슴속에서 두개의 석침(石針)을 꺼냈다.

그리고 노인은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당신의 병을 한번 치료해 주겠오" 하고 말했다. 구대는 사실 질병의 고통으로 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구대는 노인에게 "감사합니다. 어서 치료하여 주십시요" 하고 노인의 말에 쾌히 승낙하였다.

노인은 두개의 석침을 구대의 무릅에 찔렀다. 노인이 침을 놓자마자 통증이 경감됨을 스스로 느끼게되니 구대는 노인의 의술이 너무나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인은 구대에게 "이후로 두 세차례 침을 더 맞으면 완전히 치유될 것입니다." 고 말했다. 구대는 매우 기뻐하였으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마가 땅에 닿게 절하고 노인과 작별하였다.

집에 돌아오는 도중 만나는 사람마다 구대는 뜻밖에 노인을 만나 풍습병을 치료받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대의 말을 듣고 유랑 노인 부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당시 부옹 노인이 특별한 의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대는 그후로 부옹 노인을 찾아가 두 세차례 침을 더 맞고 다년간 지녀오던 지병은 말끔히 치유되었다.

한 사람이 열 사람, 열 사람이 백 사람,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많은 환자들이 부옹을 찾아와 치료 받았다. 부옹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들여 치료해 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일개 걸인에서 귀빈이 되었다. 질병이 치유된 환자들은 서로 다투어 부옹을 모셔다 주연을 베풀어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정고는 이와같은 소문을 듣고 부옹을 앙모(仰慕)하기 시작했으며 "만일 내가 부옹의 의술을 전수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 가서 만나봐야지!" 하고 혼자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정고는 즉시 부강가로 달려 나갔다. 이때부터 정고는 부옹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부강가에 가보니 부옹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부옹은 이웃 마을로 초청받아 환자를 치료하러 출타했거나 주연을 베풀어 주는 환자의 집에 초청이 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혹은 산으로 채약하러 올라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후로 부옹은 시장에서 걸식하거나 부강변에서 낚시질을 하는 일은 없었다. 정고는 실망했다. 그러나 정고는 낙심하지 않고 볼일 보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매일 강변으로 가서 부옹이 나타나기 만을 기다렸다.

 

 

정고는 어느 날 오후 부옹이 부강변에서 낚시질 하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전에 한번도 서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정고는 부옹을 상면하자마자 한눈에 정고가 듣던대로 전기적(傳奇的) 인물이다는 것을 알아 볼수 있었다. 부옹은 백발이 성성하고 희끗희끗한 멋지게 난 구레나룻 수염을 갖고 있었으며 얼굴에선 붉은 빛이 나고 만면에 자상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친자식을 대면하는 것 처럼 친절하게 정고를 대해 주었다.

부옹은 천진난만하고 티없이 깨끗한 소년 정고를 대면하고 나서 정고와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꼈다. 정고는 부옹앞으로 달려가 가슴께에서 두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노인 어르신네께서 부옹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부옹은 허! 허!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며 "맞다! 사람들이 나를 부옹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부르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 너는 무슨일로 나를 찾아왔느냐?" 하고 물었다. 정고는 "아닙니다. 제가 단지 어르신네를 한번 뵙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고 대답했다.

부옹은 정고를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본 후 "너는 아직 스무살이 않되었지?" 하고 또 물었다. 정고는 머리를 끄덕이기만 했다. 부옹은 아예 낚싯대를 거두고 정고와 친근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부옹은 정고에게 "네가 지금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정고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망설였다. 정고의 안색이 침을하고 슬퍼졌으며 슬픔으로 정신이 아뜩해지고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정고는 부옹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부옹은 정고가 머리를 흔드는 뜻을 추측하여 완전히 꿰뚫어 알수 있었다. 그래서 부옹은 정고를 달래 주기 위해서 "괜찮다! 너는 나이가 어리구나!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글공부는 했느냐?" 고 물었다. 부옹의 웃는 얼굴과 다정한 말씨는 얼어 붙었던 정고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그리고 정고는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됨으로써 코끝이 찡! 해 졌다. 이윽고 눈물 한방울이 정고의 뺨위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는 더듬더듬 "저의 이름은 정--고입니다. 부모님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글공부는 2 년 밖에 못했습니다." 고 대답했다.

부옹은 정고의 말을 듣자마자 정고가 고아라는 것을 알고 정고를 위로해 주었다. 부옹은 "괜찮다! 괜찮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은 가난과 분투하며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너는 아느냐? 이리와서 앉거라 우리 한담이나 하자구나!" 고 정고에게 말했다. 부옹은 내심 정고를 동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직하고 천진난만한 정고를 보고 한줄기 기쁨이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용솟음 쳐 나옴을 느꼈다. 친근하게 대화하는 도중 부옹은 정고에게 "나는 3 대 째 행의이다. 15 년전 나의 안사람은 심한 풍습신경통에 걸려 약을 써도 아무 소용이 없고 불치의 병이었기 때문에 침상에서 몸을 엎치락 뒷치락 하고 있었다.

나는 돌연히 딴생각이 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부인을 거느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했으며 인체생리와 해부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경혈맥락(經穴脈絡)과 석침(石針)을 놓는법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터득한 의술을 부인에게 시술하였다. 기적이 일어나서 부인의 고질병은 치유되었다. 그후 산속에서 10 여년간 신선생활을 하였다. 나의 부인은 작년 이맘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 말했다.

나는 경맥락학과 실제임상으로부터 얻은 경험을 모아 침경진맥법(針經診脈法)이란 책을 썼다. 이제 나는 나이도 들고 기력도 점점 쇠하여 짐으로 하산하여 적당한 인재를 찾으면 나의 의술을 전수해줘 활인제세(活人濟世) 할수 있게 하려던 참이다. 그래서 나는 3 개월 동안 걸식을 하며 낚시질도 하고 행의도 하면서 나의 의술을 전수할 인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네가 때마침 나타났구나!" 고 말했다. 부옹은 정고의 기질과 개성과 심지(心志)와 가세(家世)의 모든 것이 부옹이 생각했던 것과 일치됨을 알았다. 부옹이 정고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정고는 매우 기뻐하며 이마가 땅에 닿게 절하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부옹을 스승으로 모시고 의술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때부터 정고는 부옹의 그림자 처럼 부옹의 곁을 떠나지 않고 부강지역의 환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어느때는 정고는 부옹을 따라 입산하여 채약하고 7 년 동안 부옹의 의술을 열심히 배웠다. 부옹은 자기가 일생동안 경험한 임상으로부터 얻은 지식과 의술을 하나도 남김없이 정고에게 전수해 주었다.

소슬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부옹은 75 세의 고령으로 얼굴에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하직했다. 정고는 스승의 유해를 사모곁에 안장하고 하산하여 행의를 시작했다. 정고는 부옹을 친아버지 처럼 여기고 따라 다니며 그의 의술과 사상과 처세술을 본받아 잘 배웠다. 정고는 활달한 성격과 명리를 초월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30 세 이전에 부강양변에서 의덕을 겸비한 명의가 되었다.

관부에서 여러차례 조정의 벼슬자리를 정고에게 주선해 주었지만 정고는 완강히 거절하고 부옹 스승의 전철을 밟아 일생동안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정고 역시 부옹 스승과 마찬가지로 자기 의술을 전수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곽옥이란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정고는 부옹 스승으로 부터 전수받은 의술과 자신의 임상경험을 조금도 남김없이 곽옥에게 전수해 주고 산중속으로 들어가 한가하게 은거생활을 하며 여생을 마쳤다.

부옹은 동한시기 사천성 부수 부근에서 낚시를 즐겼다. 성명은 실전(失傳)하나 사람들이 그를 부옹이라 칭했다. 그는 의술에 정통했으며 후한서의 방기열전(方技列傳)에 보면 "부옹은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는 겸허하고 자만심이 없었으며 백성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해준 민간의사였다." 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타견유질자(他見有疾者), 시하침석(時下針石), 첩응시이효(輒應時而效), 내저침경진맥법전어세(乃著針經診脈法傳於世)"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부옹이 환자를 진맥하고 침석으로 치료하면 즉시 효험을 봤다. 그는 침경과 진맥법을 세상에 펴냈다." 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저서는 애석하게도 도중에 모두 분실되고 말았다.

출처 : 구암등산카페
글쓴이 : 구암(具東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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